김대중 선생의 명복을 빌며 2009
김성준(평화통일자문위원)
불과 두 달 사이에 대한민국의 근세사에 보기 드문 훌륭한 두 정치지도자를 한꺼번에 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는 상실감은 이루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나로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평화통일 자문회의 11기 때부터 미주 평통자문위원 노릇을 하면서 근자에 알게 된 분이었지만, 김대중 선생은 내가 1963년경(고2 때) 서울 아현동 천주교회 학생회 활동을 할 때 일요일 아침 8시 미사에 나오시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한 적이 있고, 1980년 5.18 광주 민중 항쟁사건 다음 해인 1981년도에 뉴욕에서 결성된 민주화 운동 단체(정의평화 민중연합)와 관계를 맺은 이후 나는, 그분이 1983년 미국 망명생활을 시작해서 1985년 귀국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뉴욕에 오실 때마다, 뉴욕의 민주화 운동권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 분을 가까이서 뵐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어서 나와 오랜 세월에 걸친 깊은 인연이 있는 분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김대중 선생의 강연과 연설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이 5.18(1980년)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언제 처형될지 모르는 인생의 극한상황(1980-1982)에서 쓴 옥중서신을 읽고 나의 젊은 시절(30대 중반)에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이 옥중서신은 그 당시 한국에서 인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뉴욕 갈릴리 문고에서 ‘민족의 한을 안고’라는 제목으로 1983년 12월에 발간되었다. 그 분의 강연이나 연설은 언제나 잘 준비된 내용으로 충만하였고, 핵심을 찌르는 논리전개는 좌중을 압도하는 경외심을 자아내곤 하였다.
근자에 쓰인 김대중 선생의 마지막 일기는 논문처럼 쓰인 옥중서신과 달리 그 분의 경천애인사상을 간결한 문장으로 맑고 깨끗하게 표현하고 있어 구구절절 열반에 이른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대중 선생의 어록가운데 내 마음에 와 닿은 말들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죽은 양심이다.” “용서하되 잊지 말자!” 토인비의 역사철학에서 따온 “인생은 도전과 응전이다.” 마지막 일기의 제목이 된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등이다. 김대중 선생의 옥중서신과 마지막 일기는 누구나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
김대중 선생은 노무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대학도 못나왔지만 스스로 노력하여 경지에 이른 위대한 인물이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감옥) 속에서도 확고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신앙’과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무수한 세계적 명저들을 독파하여 완전한 자기 지식체계로 정립하고, 이 이론과 더불어 사랑하는 자식들과 가족들에게 깨 알 같은 글씨로 안부와 격려의 편지를 쓴 옥중서신을 읽노라면, 민족과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면 예수님처럼 자기 생명을 희생 제물로 바칠 각오로 올바른 가치와 신념으로 일관된 삶을 살다 가신 김대중 선생을 경외하는 마음이 절로 나온다.
김대중 선생의 삶은 민주주의, 용서와 화해, 인권, 정의와 평화,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과 행동하는 양심으로 엮어진 죽음을 무릅쓴 현실주의적 삶이었다. 특히 김대중 선생의 용서와 화해의 정신은 국내 정치적으로 자기를 핍박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정치적 보복을 포기한 그의 관용의 정치로, 민족적 차원에서 6.25 동족상쟁을 일으킨 북한을 용서하고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대북 햇볕정책으로 나타났다. 그의 영전에 고개 숙이는 전두환 대통령의 모습과 북한의 특사 조문단이 가지고 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화가 놓인 모습을 보면서 그분의 ‘용서와 화해의 정치’의 위력을 새삼 확인한다.
“북한의 핵무장은 절대 허용하면 안 된다. 핵은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에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버리고 관계개선을 할 때만이 해결된다. 그런데 그걸 마치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남북관계와 핵문제를 연계하면 안 된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정부가 썼던 남북관계-핵 병행전략으로 다시 돌아서야 한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 김대중 선생의 명복을 빌며, 그 분이 이루지 못한 꿈을 우리가 실현할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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