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 올바른 북방정책 2010
김성준(평화통일 자문위원)
천안함 침몰 사건은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의문점들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미합동군사훈련 진행 중에 공격을 당했음에도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두 달이 지나서야 원인이 파악되는 등 한미 연합군의 방어 능력과 상황대처 능력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또한 사건발생 시각의 TOD 동영상이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고, 북한군의 침투 경로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으며, 결정적인 물증으로 제시된 어뢰 파편의 글씨에 관해서도 의문점들이 제기되고 있어 앞으로도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평시가 아닌, 그것도 미군과의 합동훈련 상황에서 초계함을 공격했다는 것은 현장에서 발각되었을 경우 국지전 내지는 그 이상의 정치 군사적 대가도 감수하겠다는 것을 각오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불가능하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냉전 시기와 같은 대결 구도가 재현되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건이 계기가 됐지만 그 배경에는 양쪽 정권의 적대적 태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대립·대결이 이어져서는 남북 모두 피해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남북관계의 관리능력 부재를 드러내왔다. 남북관계에 대한 관리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북제재만 강조하는 것은 외교적 입지를 축소시킬 뿐 아니라 위험한 안보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남한 정부에 6·15공동선언 및 10·4정상선언 존중을 주장하기에 앞서 전쟁을 들먹이고 남한 국민을 위협하는 그릇된 행동을 삼가야 한다. 북한이 자신의 주장대로 천안함 침몰과 무관하다면 적극적으로 해명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남한 조사결과를 반박할 증거를 내놓지 않은 채 날조극이라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설득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강경대응만 한다면 북한은 스스로 자기를 변호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잃게 될 것이다.
1980년대부터 중국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세워왔다. 56개 민족으로 이뤄진 중국은 그 구성 민족과 영토의 역사를 모두 중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중에서도 동북공정(東北工程)은 2002년 2월 28일 정부 승인을 얻어 국책사업으로서 추진되고 있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한국사에서 지우는 작업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사는 시간적으로는 2000년, 공간적으로는 한강 이남에 국한되고 그 이북은 중국사에 편입된다. 북한 경제의 중국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중국에서 동북4성이란 말이 자주 들린다. 북한이 붕괴되는 사태가 발생하면 동북3성인 랴오닝성(遼寧省), 지린성(吉林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 이어 북한이 동북4성으로 편입된다는 소리다. 역사공정은 바로 동북4성의 논리적-역사적 배경을 제공하는 작업이다.
이명박 정부의 남한은 북한을 자국의 영토라고 생각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하고 있다. 남한의 체제 우월성은 남한의 경제적 성취가 이미 입증했다. 북한과의 대화는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는 사실도 체험적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대립이 지속될 경우 북한 경제의 중국 종속화를 가속시킬 것이고, 종국에 남한은 한반도의 북쪽을 잃을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북한이 동북4성이 되기를 원하는가? 동독의 갑작스런 붕괴에 따라 발생한 독일의 통일 비용에 비해서 점진적인 재통합을 위해 굶주리는 북한 동포에게 쌀을 지원하는 햇볕정책이 훨씬 싸게 먹히는 게 분명한데, 곳간에 남아돌아가는 쌀을 퍼 주는 게 뭐 그리 아깝단 말인가?
햇볕정책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수구 보수 세력은 통일까지 20년이 걸린 독일의 동방정책(Ostpolitik)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옹졸한 마음과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태도로 외세가 강제한 한반도 분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햇볕정책은 하룻밤에 성공할 수 없다. 20년 아니라 30년이라도 참고 기다리며 끊임없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올바른 북방정책의 수립과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성 있는 실행만이 분단국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거시적 안목에서 역사의식을 갖고 남북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지혜가 요청된다.
영국 신문 파이낸셜 타임즈는 5월 27일자 독일 판 논평을 통해 “천안함 사태는 남북대결을 강화하고 대북지원을 중단함으로써 북한을 불안정하게 하려는 보수주의자들의 잘못된 계산이 부른 결과다. 북한 정권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기대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원하는 중국이 김정일의 몰락을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관심은 북한 체제 변화가 아니라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호전되든 냉전시기로 회귀하든 가까운 시일 안에 북한에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남북관계의 호전과 교역 확대는 적어도 양측 경제에 도움이 되고 빈곤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의 운명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신문은 계속해서 “김정일의 정치적 의제는 권력 유지라는 목표에 수렴돼 있고, 북한은 경제 협력과 핵문제에 관한 국제 협상에서 정권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놀랍도록 유연한 태도를 보여 왔다. 이런 점은 북한의 협상 파트너들에게 북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전임자들은 ‘햇볕정책’이라는 틀 안에서 이런 점을 이용해 한반도 긴장을 한국전쟁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유화노선을 비판하고 상호주의를 내세워 북한 체제 붕괴를 추구한다는 인상까지 불러일으킨 이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도덕적으로 정당하지만 긴장 고조와 희생자 발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천안함 사태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한국은 유연한 자세로 남북협력을 확대해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꾀해야 할 것이다.”라고 보도했다고 전해진다.
옹졸하고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수구 보수 세력은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흔히 좌경화한 빨갱이로 매도하는데, 그것은 자기편에 서지 않는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격을 파괴하려는 옹졸하고 편협한 그들 특유의 매우 그릇된 근성이다.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북한 정권이 예뻐서 그러는 게 결코 아니다. 거시적이고 역사적 안목에서 그러는 것이다. 긴장이 고조되면 우리가 잃을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평화의 정착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부합하고 민족이 살 길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충돌이 교전을 부르고, 국지전이 언제 전면전으로 비화될지 모르는 분쟁의 시대가 우리가 살아갈 미래일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평화는 평화를 꿈꾸는 자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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