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좋아 등산클럽의 여름 캠핑 여행기 2010

매주 토요일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해리만 스테이트 파크(Harriman State Park) 일대를 중심으로 등산을 즐기던 사람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여서 2006년 “산이좋아”라는 명칭을 택하고 등산을 계속하게 된지가 벌써 4년째가 되었다. 우리 산이좋아 등산 클럽은 www.sanijoa.blogspot.com 에 우리 산행 동정을 게시하고 있다. “산이좋아”는 다른 말로 “사니좋아”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우리 산이좋아 등산클럽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우리 산행에 연거푸 3번 이상 참여하면 회원으로 인정된다. 현재 회원 수는 약 30여명이며 매주 빠지지 않고 나오는 회원 수는 대개 6-12명 정도 된다. 우리 등산클럽의 대장은 송하중 님이고 부대장은 공 다니엘 님이다. 우리 등산클럽은 작년 여름에 뉴햄프셔(New Hampshire) 주의 화이트 마운틴(White Mountains)에서 캠핑을 하였고, 올해는 뉴욕(NewYork) 주의 비버킬 캠프장(Beaverkill Campground)에서 7월 2일(금요일)부터 7월 5일(월요일)까지 캠핑을 하였는데, 이 글로써 우리 등산클럽의 올해 여름캠핑 여행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계획
 
우리는 2월부터 이번 독립기념일 긴 주말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해 여러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작년에 갔던 화이트 마운틴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갈 때 하루 올 때 하루를 잡아먹는 점이 대부분의 회원들이 주저하는 점이었기 때문에 올해는 두 세 시간 운전 거리에 출퇴근도 할 수 있는 장소가 좋겠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래서 필자가 20여 년 전 애들이 어렸을 적에 여름이면 데리고 다니며 놀던 곳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장소 비버킬 캠프장을 제안하여 여러 회원들의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필자가 참가자 확인과 참가자 수에 맞는 장소예약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되었다. 3월 첫 토요일까지 참가자 수가 참가비를 예치한 15명으로 확인되었다. 그래서 3월 두 번째 주중에 캠프 사이트 예약을 완료하였다.
 
비버킬 캠프장은 뉴욕 주 소관으로 구글 써치에 “Beaverkill Campground”를 치면, 캠프장 경관, 약도, 편의시설, 오는 길, 규칙, 등 캠프장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캠프장은 오후 12시부터 9시 사이에 체크인해야 예약된 장소를 점거할 수 있다. 우리는 7월 2일 오후 12시부터 7월 5일 오전 11시까지 3박 4일까지 물이 졸졸 흐르는 냇가에 위치한 89, 91, 92, 93 싸이트를 4 회원의 이름(모세, 아가다, 다니엘, 캐롤린)으로 각각 예약이 되어있었다. 왜냐하면 이 캠프장은 한사람이 여러 싸이트를 예약할 수 없게 되어있고, 한 사람이 오직 한 싸이트 밖에 예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출발 2주전부터 참가자 수를 마지막 점검하였다. 참가비를 예치한 사람이 15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1명이 사정상 참가할 수 없게 되었고, 2명이 연락이 되지 않아서 마지막 1주전까지 참가자 수가 12명으로 확인되었다. 그래서 한 싸이트를 취소하였다. 그 때 즈음하여 3명이 추가되고 그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2명이 뒤늦게 연락이 와서 결국 17명으로 참가자가 늘어나서 고민이 생기게 되었다. 한 싸이트에 정원이 6명이기 때문에 3 싸이트 면 충분한데, 한 싸이트에 텐트 2개, 자동차 2대 제한이 4 싸이트를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취소된 싸이트는 벌써 다른 캠퍼에게 넘어가고 남아있는 싸이트는 이 캠프장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 문제 때문에 필자는 매우 심기가 불편하였다. 마지막 순간에 한 싸이트를 취소하고, 원래 계획에 없던 사람을 받아들인 것이 이 모든 마음고생의 원인이 되었다. 싸이트를 여유있게 잡아둬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상황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출발
 
우리는 7월 2일 금요일 오후 1시에 사무실 문을 닫고 오후 3시경 출발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데 한 자동차로 함께 떠나기로 한 분이 늦게 도착하여 출발이 1시간가량 지연되었다. 오후 4시가 좀 지나서 출발하였는데, 도로 사정은 약간 정체가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비교적 양호하였다. 비버킬 캠프장에 도착한 때는 저녁 8시경이었다. 등록을 마치고 우리 싸이트에 텐트를 치기 시작한 때는 8시 반경.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캠프 파이어를 지피고 할 때는 벌써 해가 저물어버렸다. 저녁식사는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온 음식으로 각자 곺은 배를 달랬다. 밤이 깊어가자 주위는 고요해지고 이웃 싸이트에서 도란도란 말소리들이 들려오고, 주먹 만 한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이 바로 우리 머리위에서 금방 쏟아져 내릴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몇 사람들이 우리 캠프 병참참모 최일선 님이 캠프 파이어 석쇠위에 손수 만들어 올려놓은 큰 냄비 속에서 보글보글 끓는 닭죽을 침을 흘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자정이 지난 시간에 결국 우리를 위하여 죽은 닭의 살코기와 함께 후후 불며 훌훌 마시는 뜨거운 닭죽은 해장국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이를 닦고 쳐놓은 텐트에 들어가 잠을 청한 때는 새벽 1시경이었다. 휘영청 밝은 달이 새벽을 밝히고 있었다.
 
첫날
 
비 내리는 소리처럼 밤새도록 졸졸 흐르는 물소리, 지지배배 지저귀는 새소리, 불편한 잠자리, 새벽녘의 한기, 등이 일찍 우리들의 단 잠을 깨웠다. 개울물에 내려가서 이빨 닦고 세수하고, 캠프 파이를 지펴 불을 쬐고, 라면도 끓이고 간밤에 남은 닭죽도 데우고, 커피도 끓인 물에 타마시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 멤버들이 대부분 캠프 파이어 주위에 모여 들어서 말없이 각자 아침 요기를 하고 있었다. 신선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울창한 숲 위로 비스드미 떠오르는 태양아래서 담소하며 식사하는 기분을 누가 알랴?.... 어제 밤에 도착하지 않은 김명준 부부와 세시리아 자매가 꽤나 먼 새벽길을 달려와 마침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우리 캠프장에 박수갈채를 받으며 입장하였다. 멋쟁이들!... 박수를 받으려면 남보다 늦게 도착해야해!!
 
우리 일행은 오늘 7월 3일 토요일과 내일 7월 4일 일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처 발삼 레이크 트레일(Balsam Lake Trails)에 가서 등산하고 돌아와서 오후 6시부터 캠프 파이어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하고, 모레 7월 5일 월요일은 오전 11시에 체크아웃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첫날 오전 10시 우리는 잠시 캠프장을 떠나 예정된 산행지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 강원도 산골짜기에서나 본 듯한 구불구불 냇가를 끼고 도는 시골 동네 길을 따라서 가끔 반대 방향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를 아슬아슬 피해가며, 또한 가끔 비좁고 자갈과 흙먼지 가득한 비포장 도로를 40여분 달리니 우리의 산행지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여러 트레일 가운데 가장 가파르다는 트레일을 따라 약 2시간 남짓 땀을 흘리며 올라가서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싸온 샌드위치를 나눠먹고 30분가량 노닥거리다가 1시간 남짓 다른 산비탈을 끼고도는 산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다시 각자 타고 온 자동차를 타고 캠프장에 돌아와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저녁시간을 기다리는데 오후 4시반경 되었다. 좀 이른 감이 있었지만 모두들 배도 고프고 오늘 저녁 해지기 전에 떠나야 할 분들도 있어서 우리들은 벌써 화덕에 불을 지피고 어름 통에 넣어두었던 꾀 묵직한 쇠고기 덩어리를 꺼내어 토막을 내고 있었다.
 
쇠고기는 작년 여름에 화이트 마운틴 갬핑 때 먹었던 리브 아이(Rib Eye)였다. 리브 아이는 숫불에 천천히 구워서 익힌 상태가 먹기에 좋았다. 물론 위스키나 맥주를 찔끔찔끔 곁들여 마시며 먹을 때 그 맛은 과연 일품이었다. 최일선 님은 숫불을 지피고, 안전칠 님은 고기를 알맞게 자르고, 캐빈 킴은 구어진 고기를 타지 않도록 꺼내어 여러 사람이 집어먹을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잘라놓고, 아가다(미세스 킴모세), 캐롤린(미세스 공다니엘), 세실리아(미세스 킴), 빠스까리나(미세스 안), 데레사(미세스 이학수), 등 여러 자매님들은 각종 야채와 된장 고추장을 테이블 위에 소복이 쌓아놓고, 누가 지휘하는 것도 아닌데 모두 말없이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이날 특히 맛있었던 특별 레싸피는 공 다니엘 님이 손수 만든 돼지 삼겹살 김치볶음이었는데 뉴욕지구 어느 식당에서도 맛볼 수 없는 최고수준의 일품 요리였다.
 
이날 캠프 파이어 저녁 파티는 초저녁부터 무르익어갔다. 저녁 7시 반이 지나자 공 다니엘 부부(2), 세실리아 자매(1), 한준모 가족(3), 등 여러분이 대거 석별의 정을 나누며 더 어두워지기 전에 우리 캠프장을 떠나갔다. 우리 남은 사람들은 드디어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버리고 땅거미가 져서 여기저기에 반딧불이 나타나는데도 계속 나무를 화덕에 집어넣어 불을 피우고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며 먹고 마시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한 사람 두 사람씩 캠프 파어어 주변에서 어두움 속으로 사라지고 불과 몇 사람만이 남았을 때 마침내 우리도 자야할 시간이 된 것을 문득 깨달았다. 이때가 자정이었다. 하늘을 쳐다보니 무수히 많은 별들이 주먹만큼이나 크게 돋보이며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도 이를 닦고 텐트 안에 마련된 내 잠자리에 들었다. 높은 산에서는 별이 유난히 커 보인다.
 
둘째 날
 
둘째 날 역시 아침 6시경 일찍 잠에서 깨었다. 물소리와 새소리, 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더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었다. 산에서는 해가 떨어지면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아침 해뜨기 전 새벽녘이 되면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캠핑할 때는 반드시 슬리핑 백과 보온이 되는 겉옷을 가져가야 하는데, 무더운 여름 날씨만 생각하고 이러한 것을 안가지고 온 사람들은 밤과 새벽에 추위로 고생을 하게 된다.
 
이날은 어제보다 기온이 올라가서 해가 떠오르면서 아침부터 무더위가 느껴졌다. 개울물에 내려가서 이빨 닦고 세수하고, 캠프 파이를 지펴 불을 쬐고, 라면도 끓이고 간밤에 남은 닭죽도 데우고, 커피도 끓인 물에 타마시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 멤버들이 대부분 캠프 파이어 주위에 모여 들어서 아침 요기를 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 6명이 떠났는데 오늘 아침에는 우리 캠프에 없어서는 안 될 병참참모 최일선 님이 식사가 끝나자마자 석별의 인사를 나누며 우리 캠프장을 떠나갔다. 아마 더 이상 재미가 없어서 떠나는 것 같은데, 긴 주말에 집에 온 사랑스러운 따님 다이아나를 학교에 데려다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떠날 때는 누구나 변명이 있었다. 이제 남은 사람들은 13명이 되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우리는 캠프장에 남아서 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어제 갔던 등산 행선지로 향하였다. 떠나버린 사람들이 남긴 썰렁한 분위기 때문에 남은 사람들은 오늘은 2시경에 점심식사를 하고 6시경에 저녁식사를 하고 8시경에 캠프장을 철수하기로 의견을 수렴하였다. 따라서 우리들은 2시에 예정된 점심시간에 맞춰서 산행시간을 조절하면서 등산을 하였다. 오늘 트레일은 어제 갔던 반대 방향으로 나있는 북쪽 산길이었다. 북쪽인지라 응달진 곳이 많아서인지 곳곳에 서있는 죽은 고목에 어른 손바닥보다 큰 상황버섯이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아줌마들은 상황버섯을 따는데 관심이 많았다. 아줌마들은 가는 길에 따서 오는 길에 거둘 수 있도록 눈에 띄는 곳에 놓아두곤 하였다. 따둔 상황버섯을 오는 길에 주워 담았는데,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큰 봇짐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목을 가로지르는 개울물에서 땀도 닦고 등물도 하는데 물이 너무 차가워서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으흐흐흐....
 
우리들은 예정대로 오후 2시경에 우리 캠프장에 도착하였다. 남아있던 사람들이 벌써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땀에 절인 몸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불고기에 상추에 풋고추에 막 된장에 시원한 맥주에 천상음식을 들고 각자 자유 시간을 즐기며 저녁식사 시간을 기다렸다. 어떤 사람들은 개울물에서 물장난을 치고, 어떤 사람들은 텐트 속에서 달콤한 오수를 즐겼다. 나는 텐트 속에서 오수를 즐겼다. 한 잠을 자고 일어나니 오후 4시경이 되었다. 나는 혼자서 비지땀을 흘리며 서서히 텐트를 안쪽에서부터 거두고 있었다.
 
오후 5시경이 되자 한 사람 두 사람 우리 캠프 싸이트에 모여들었다. 또다시 불을 지피고 저녁식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이제 남은 음식을 모두 떠나기 전에 처분하는 것이 문제였다. 쇠고기는 아직도 큰 덩어리가 남아있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먹을 만큼 화덕위에 올려놓고 나머지는 토막을 내어 남아있는 사람들의 가족단위로 싸서 나눠가졌다. 캠프 파이어 장작도 몇 포대가 남아있었는데 두어 포대 남겨두고 모두 화덕에 던져 넣었다. 떠나기 전 마지막을 장식하는 의미가 있었다. 모두 배불리 먹고 떠날 준비가 완료 된 때가 저녁 8시경 해가 석양에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기막힌 시간 조절이었다.
 
우리는 내일 집에 가는 길에 쇼핑을 하면서 간다는 김명준 부부를 뒤에 남겨두고 3박4일 예정이었던 캠핑을 2박3일로 줄이면서 잠시 정들었던 캠프장을 뒤로 하고 집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이때가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저녁 8시 반경이었다. 캠프장을 탈출하여 뉴욕을 향한 루트 17까지 꾸불꾸불 이르는 시골길은 그야말로 옛날 한국에서 살적에 다녔음직한 강원도 산길과 다름없는 길이었다.
 
루트 17 동쪽 - 루트 87 남쪽 - 탑판지 브리지(Tappanzie Bridge) - 루트 287 동쪽 - 태코닉 파크웨(Taconic Parkway)이 남쪽 - 허친슨 리버 파크웨이(Hutchinson River Parkway) 남쪽 - 화이트 스톤 브리지(Whitestone Bridge) - 플러싱, 무려 130여 마일을 거침없이 내려와 자기 차를 대령해 오가는 길 우리를 편안하게 운송해준 안전칠 부부님과 우리 집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질 때 시간이 밤 11시 경이었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출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오전 11시 이전에 체크 아웃 해야 하는 관계로 아침식사하고, 아침이슬이 마르기전에 텐트를 거두어서 서둘러 캠프장을 나와야하는 점을 생각하면, 차라리 전날 밤에 떠나서 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자고 다음 날 온종일 골프를 치거나, 오우션 비치에 가거나, 샤핑을 가거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차라리 전날 저녁에 떠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여하 간에 나와 아내 아가다는 전날 밤에 집에 돌아온 것이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끝.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를 다녀와서 1984

나의 마지막 한국여행 2015

한태격씨의 글을 읽고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