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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September, 2011

뉴욕 한인회의 대표성(2) 2011

김성준 (대뉴욕지구 보험재정협회 상임이사)   2년 전 치러진 31대 뉴욕 한인회 회장선거는 돌이켜 보건대, 중상모략, 유언비어, 권모술수, 매수, 매표, 등으로 얼룩진 선거였다. 의도적으로 편파 보도하는 언론, 앞에서 공명선거를 부르짖으면서 뒤에서 부정선거를 저지르는 위선적 후보, 한국의 정치판을 빼닮은 것에 다름 아니었다. 어떤 해에는 경쟁자가 없어서 단독 입후보한 후보자가 무투표로 당선된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세 후보의 과열경쟁으로 동원된 15,170명의 투표 참여자 수는 인위적으로 동원된 불특정 다수로서 사상 최다 숫자를 기록하였다. 선거결과는 후보자의 인품과 자질보다는 한인사회에 존재하는 지연, 학연, 혈연, 종교, 단체, 한국의 정치적 당파, 등을 총망라해서 누가 효과적인 조직과 동원을 관리하고 운영했는가에 따라 결정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올해 실시된 32대 회장선거는 등록마감 전까지 두 후보가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서서히 경선열기가 피어오르는듯하다가 지난 선거에서 차점으로 석패한 한창연 씨가 단독 입후보하여 경선 없이 마무리되었다. 우리 동포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뉴욕 시장이나 뉴욕 주지사를 뽑는 것도 아닌데, 우리 한인사회의 우두머리(?)를 뽑기 위해서 매 후보마다 수 십 만 불씩 쓰면서 법석을 떨지 않게 되어 매우 다행이다. 자원봉사 직에 불과한 한인회장을 뽑는데 이런 형태의 선거는 이성적인 제정신으로 하는 선거라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돈으로 차라리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을 도모하는 유권자 쎈타, 미국 정계에 진출하는 한인 2세 정치인들을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2011년 3월 27일 만하탄 한인회관에서 25만 동포사회를 대표(?)하는 188명의 회원이 참석한 정기총회에서 187명의 동의를 얻어, 한창연 씨가 제 32대 뉴욕 한인회 회장으로 인준을 받고 5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지난 2년간 와신상담한 한창연 씨에게 축하를 보내며 그의 선거...

뉴욕 한인회의 대표성 2011

김성준 (대뉴욕지구 보험재정협회 상임이사) 3월 27일 예정된 제 32대 뉴욕 한인회 회장 선거가 선거 마감일 2월 25일 오후 5시 단독 후보로 밝혀짐에 따라 “다행히” 경선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등록마감 전까지는 두 후보가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서서히 경선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 동포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뉴욕 시장이나 뉴욕 주지사를 뽑는 것도 아닌데, 매 2년마다 우리 한인사회의 “우두머리(?)”를 뽑는데 수 십 만 불을 쓰면서 이리도 법석을 떨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선거는 이성적인 제정신으로 하는 선거라고 볼 수가 없다. 그런 돈으로 차라리 한인 2세 정치인들을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자원봉사 직에 불과한 한인회장이 우리 동포들의 실질적 삶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우리 자신들의 재정문제, 가정문제, 청소년선도문제, 노인복지문제, 장애자우대문제, 소상인 보호문제, 등등 우리 자신들의 문제를 얼마나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일까?....   돌이켜 보건대, 2년 전에 치러진 31대 회장 선거는 중상모략, 유언비어, 권모술수, 매수, 매표, 등으로 얼룩진 선거였다. 의도적으로 편파 보도하는 언론, 앞에서는 공명선거를 부르짖으면서 뒤에서는 부정선거를 저지르는 위선적 후보, 한국의 정치판을 빼닮은 것에 다름 아니었다. 어떤 해에는 경쟁자가 없어서 단독 입후보한 후보자가 무투표로 당선된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세 후보의 과열경쟁으로 동원된 15,170명의 투표 참여자 수는 인위적으로 동원된 불특정 다수로서 사상 최다 숫자를 기록하였다. 선거결과는 후보자의 인품과 자질보다는 한인사회에 존재하는 지연, 학연, 혈연, 종교, 단체, 한국의 정치적 당파, 등을 총망라해서 누가 효과적인 조직과 동원을 관리하고 운영했는가에 따라 결정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미국 법은 선거비용을 모금하고 사용하는데 투명성을 요구하는데, 지난 선거에서 각 후보들이 ...

뉴욕 한인회 창립 50주년에 즈음하여 2010

김성준 (평화통일 자문위원)   뉴욕 한인회가 “제 50주년 뉴욕 한인의 밤 및 미주 한인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2010년 1월 13일 매해튼 메리엇 마퀴스 호텔에서 성공리에 개최하였다. 참석인원 1100명에 데이빗 패터슨 뉴욕 주지사, 척 슈머 뉴욕 주 상원의원, 등 거물 정치인들까지 참석하였다는 보도는 주최 측의 탁월한 동원능력을 돋보이게 한다. 그런 능력이 우리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과 직결되기를 기대하며, 뉴욕 한인회의 건투를 빈다.   한편 뉴욕과 뉴져지의 한인사회를 무대로 활약하는 수많은 지역 직능 단체들의 참여가 미흡했다는 보도는 대 뉴욕지구 한인사회의 대표기구라고 주장하는 뉴욕 한인회의 구조적 한계와 매 2년마다 고질적으로 대두되는 회장선거 제도의 불합리성을 떠올리게 하는 바, 뉴욕 한인회 창립 50주년에 즈음하여 뉴욕 한인회가 당면한 과제를 동포사회의 지도자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해보고자한다.   뉴욕 한인회는 50년 전 불과 수백 명의 유학생 및 지상사 직원들의 친목단체로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 때는 한인회밖에 이렇다 할 단체가 없었으므로 명실 공히 한인사회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었고, 한인인구가 수천이 될 때까지도 불특정 다수투표로 뽑는 회장선거제도가 별 문제가 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한인사회는 지난 50년 또는 30년 전과 전혀 비교할 수 없는 규모와 다양성의 소수민족 공동체로 성장 발전하여 그 때 만들어진 뉴욕 한인회의 회칙은 그간 여러 차례 짜깁기를 하였지만 이제 어릴 때 입던 옷이 어른이 된 때 맞지 않는 것처럼 옹색한 유물이 되어버렸다.   오늘 날 뉴욕과 뉴 져지에 거주하는 한인인구는 공식적으로 약 25만 명, 비공식적으로는 그 두 배가 되는 50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것 같다. 여하 간에 필자가 이민 온 30여 년 전에 비하면, 대 뉴욕지구 한인사회는 인구는 10배 이상, 경제력은 100배 이상 성장했다고 추정된...

뉴욕 한인회 선거 소감 2009

김성준(평화통일 뉴욕 협의회 자문위원)   이번 선거는 특히 중상모략, 유언비어, 권모술수, 매수, 매표, 등으로 얼룩진 선거였다. 방송사의 편파적 방송, 언론의 자기중심적 보도, 앞에서는 공명선거를 부르짖으면서 뒤에서는 부정선거를 저지르는 위선적 후보, 한국의 정치판을 빼닮은 것에 다름 아니었다. 어떤 해에는 경쟁자가 없어서 단독 입후보한 후보자가 무투표로 당선된 적도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세 후보의 과열경쟁으로 동원된 투표 참여자 15,170명이 인위적으로 동원된 불특정 다수로서 사상 최다 숫자라고 하는 것밖에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선거결과는 후보자의 인품과 자질보다는 동포사회에 존재하는 지연, 학연, 혈연, 종교, 단체, 한국의 정치적 당파, 등을 총망라해서 누가 효과적인 조직과 동원을 관리하고 운영했는가에 따라 결정된 것에 다름 아닌 것 같다. 미국 법은 선거비용을 모금하고 사용하는데 투명성을 요구하는데, 이번 각 후보들이 쓴 선거비용을 법적으로 조사라도 할 수 있다면, 부끄럽고 곤란한 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수 십 만 불이 거래되는 뉴욕 한인회 선거에 언젠가 미국정부의 눈초리가 쏠리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뉴욕 한인회가 우리 동포들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기에 매 2년마다 우리 동포사회가 이리도 법석을 떨어야 하는 지 동포사회의 지도자들의 반성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 동포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뉴욕 시장이나 뉴욕 주지사를 뽑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수 십 만 불을 들여서 차지한 한인회장이라는 자원 봉사 직이 우리들의 문제(재정문제, 가정문제, 청소년선도문제, 노인복지문제, 장애자우대문제, 소상인 보호문제, 등등)를 얼마나 해결해줄 수 있다는 것인가? ....   나는 인위적으로 동원된 불특정 다수에 의한 선거방식을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대의원들에 의한 선거방식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한인회의 구조를 동포사회의 실세로 활략하는 수많은 단체들의 대의...

"대표한다"는 말

5월 9일 금요일 저녁 코리아 빌리지 대동연회장에서 뉴욕일보 창간 5주년 기념회가 열렸다. 5년 전 주간지로 뉴욕 동포사회에 출현한 “뉴욕 뉴스”가 그간 “뉴욕 일보”라는 일간지로 전환하여 동포사회에 기득권을 누리는 주요 일간지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미주 동포사회의 순수 일간지로 자리 매김하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창간 5주년을 축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뉴욕일보가 언론다운 언론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여러 동포들과 동포사회의 지도자라고 할 만한 분들이 성황을 이루어 초대받은 한 사람으로서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여러 분들이 단상에 올라가서 축사를 하였는데, 그 분들은 대개 어느 지역을 대표한다고 하는 분들이었다. 뉴욕 한인회 회장, 평통 뉴욕협의회 회장, 뉴욕 지역한인회 연합회 의장, 뉴져지 한인회 연합회 의장, 미주 한인회 연합회 의장, 등 여러분들이 단상에 올라가서 축하인사를 하였다.   축사를 한 여러분 가운데 특히 뉴욕 한인회 회장은 “50만 동포를 대신하여” 축하인사를 하였고, 뉴져지 한인회 연합회 의장은 “뉴져지에 거주하는 20만 동포를 대신하여” 축하인사를 하였다. 나는 이 “대신한다”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그 분들이 누구에 의해서 언제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50만과 20만의 대표로 뽑힌 것일까?... 과연 우리 동포사회를 그런 식으로 대표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기나 하는 것인가?... 동포사회의 인식과 그 분들의 인식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이명박정부가 근자에 미국과 체결한 불공정한 수입협정에 대해서 논란이 분분하다. 서울 청계천에서 진행되고 있는 촛불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 국민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광우병에 노출된 쇠고기가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그에 대한 검역대책이 허술한 쇠고기 수입협정을 반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가운데 느닷없이 뉴욕 한인회가 대 뉴욕지구의 ...

뉴욕 한인회의 숙제

김성준(평통자문회의 뉴욕협의회 위원)   요란스럽게 시작된 제 30 대 뉴욕 한인회 회장선거가 싱겁게 막을 내렸다. 세 후보자가 나와서 오랜(6년)만에 경선이 되기는 했지만, 우리 동포사회가 이 부질없는 선거에 쏟은 비용과 시간과 정력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생각할 점이 많은 것 같다. 나의 추산에 의하면, 이번 선거에 세 후보자가 쓴 비용은 최소한 30만 불 이상이 되는데, 이 것은 지난 달 클린턴 대통령이 코리아 빌리지에 와서 모금한 액수보다 두 배 정도 많은 금액이 아닌가 한다. 당선된 사람은 그래도 기분이 좋겠지만, 낙선한 두 사람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10만 불이 아깝지 않을까?... 뉴욕 한인회 회장이 무슨 의미가 있기에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가치가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 정부를 상징하는 영사관이 인정해 주니까?.... 그렇다고 동포사회도 인정해 주는 것일까?....   나는 뉴욕 한인회의 회장을 뽑는데 있어서 동포사회의 돈과 시간과 정력을 부질없이 낭비해야하는 불특정 다수를 인위적으로 동원해서 회장을 뽑는 직접선거제도를 동포사회의 실세들의 대의원들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사회가 회장을 뽑는 간접선거제도(대의원 선거제도)로 바꾸자고 여러 차례 지상을 통해 주장한 바 있다. 이 주장에서 나는 실세들의 대의원들의 모임이 될 이사회가 회장을 뽑게 되면, 우선 선거비용이 들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식견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등장이 가능하고, 동포사회의 실세들의 대의원들이 권력의 핵심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여러 단체들의 역량을 자연스럽게 통합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왔다. 그래서 뉴욕 한인회의 구조 조정 또는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뉴욕 한인회의 대표성은 국제사회의 정치무대라 할 수 있는 뉴욕 시를 중심으로 그에 인접한 뉴져지 및 코네티컷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한인들의 미국 정계와 주류사회에 대한 대표성으로 생각되어왔는데, 이 번 선거를 통해 그 대표성의 한계...

나는 이런 사람을 찍고 싶다

김성준(평통자문회의 뉴욕 협의회 위원)   제 30대 뉴욕 한인회 회장선거가 한 주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선거에서 다뤄져야 할 동포사회의 이슈는 뒷전으로 밀리고, 선거시행 세칙에 대한 불만과 항의가 선거를 지켜보는 동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선거시행 세칙을 제시하는 선거관리 위원회도,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선거시행 세칙을 고치지 않으면, 선관위의 직무정지도 불사하겠다는 후보자들도 모두가 자가당착에 빠져있는 것 같다.   나는 대 뉴욕 지구에 거주하는 한민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50만 동포들을 회원으로 하며, 이 50만 동포들 가운데 극소수(2%)의 불특정 투표자들을 동원하여 그 중 다수표를 얻은 사람이 대 뉴욕 지구 동포사회를 대표한다는 회장에 당선되도록 되어있는 현 뉴욕 한인회 회장선거 방법이 매우 부조리하기 때문에 다원화된 동포사회의 실세들의 대표들(대의원)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 이사회가 회장을 선출하는 구조로 뉴욕 한인회의 구조를 개혁하자는 제안을 여러 차례 한바 있다.   우리 동포들은 모습만 보고도 중국 사람이나 다른 동남아 사람들과 구별이 되는데, 미리 마련된 선거인 명부가 없는 상황 아래서, 한인으로 인정되면 무조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해야지, 투표를 하는데 왜 여권을 지참해야 되는지 석연치 않다. 조선족의 몰표를 두려워하는 것인가?... 조선족도 우리 동포들인데, 그들의 몰표가 문제가 될 수 있다면, 동포사회에 존재하는 지연, 학연, 종교 연, 등으로 얽히고설킨 여러 집단들의 몰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져지 한인회가 자기 영역에 투표소 설치를 거부한 것은 뉴욕 한인회의 대표성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것은 다원화된 동포사회의 대표성 시비의 시작에 불과하다. 동포사회의 실세들의 대표들(대의원)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 이사회가 회장을 선출하는 구조로 뉴욕 한인회의 구조를 개혁하게 되면, 집단 이기주의적인 몰표, 대...

뉴욕 한인회 무엇이 문제인가?

대 뉴욕지구(뉴욕, 뉴저지, 코네티컷)에 거주하는 한민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40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인들을 회원으로 하며, 공관(뉴욕 총영사관=대한민국 정부)이 관례대로 대 뉴욕지구의 동포사회의 대표기구로 인정하는 뉴욕 한인회가 제 30대 회장선거를 치루고 있다. 마치 대 뉴욕지구에 거주하는 동포사회를 통치할 제 30대 미주 한인 대통령이라도 뽑는 것 같은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과연 그런가?....   뉴욕 한인회 회장이 무엇을 의미하기에 과도한 공탁금($60,000.)을 지불해가며, 대한민국 정부가 부여한 영예로운 평화통일자문협의회 회장 직을 벗어 던지면서까지 출마했으며, 한 번이면 충분한 것 같은데 무엇을 더 보여주려고 출마했으며, 은퇴해서 여생을 조용히 설계할 나이에 무엇을 보여주려고 출마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뉴욕 한인회가 정말 대 뉴욕지구에 거주하는 동포사회를 통치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공관이 뉴욕 한인회를 대 뉴욕지구의 대표기구로 인정한다고 해서 동포들도 그렇게 믿고 따르는 것일까?.... 우리 대 뉴욕지구에 거주하는 동포들은 이번 뉴욕 한인회 선거를 통해서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뉴욕 한인회의 문제점은 동포사회의 실세들을 권력구조에 끌어들이지 않으면서, 그들을 산하 단체로 여기려는 데 있다. 동포사회의 실세들은 지역 한인회, 직능 단체 및 사회봉사 단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실세들은 각기 자기의 독특한 활동영역과 분야가 있으며, 뉴욕 한인회가 있건 말건 상관없이 그들 나름대로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다. 반면 뉴욕 한인회는 이 실세들의 집단적 도움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실세들에게 아무런 권한도 부여하지 않고 단지 산하 단체로만 여김으로서 스스로 존재론적 위기에 빠져 있다.   뉴욕 한인회는 대 뉴욕지구에 거주하는 한민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40만으로 추산되는 한인들을 회원으로 한다는 데 그 존재근거를 가지고...

정 토마스 신부님과 나 2008

정 토마스 신부님과 나 그리고 정토마스 신부 추모사업에 대한 제언 김성준 모세   나는 1962년 성탄절(15세)에 서울 아현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 1976년 가을(29세)에 미국에 이민 왔다. 그 이듬해 1977년(30세) 사순절에 <리고 파크>에 있는 <성 안젤루스 성당>에 셋방살이하던 <퀸즈 한인 천주교회>라고 불리는 작은 한인 가톨릭 신앙 공동체에서 정토마스 신부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지나 간 한 세대를 돌이켜 보면서 만일 정 토마스 신부님이 없었더라면 이민자로서 나의 삶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생각해본다. 하느님의 오묘하신 섭리는 젊음과 건강이 넘치던 내 인생의 황금기(30/40대)에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정 토마스 신부님을 만나게 해 주셨다. 나는 그분 곁에서 그분이 풍기는 인품과 영향력아래 인간적 신앙적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환갑이 지난 오늘에도 눈에 선한 잔잔한 미소를 띠신 얼굴의 정 토마스 신부님을 기억하며, 그 분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인간 김성준, 신앙인 김모세의 스승이었다고 말한다.   정 토마스 신부님의 특성   제자가 스승을 평가한다는 것은 외람된 일이다. 그러나 존경하는 신부님을 회고하면서 그 분이 이민자의 삶을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 보려고 그 분 주위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에게 보여준 특징을 내 나름대로 몇 가지 간추려본다.   1. 용인술의 천재 신부님   신부님은 당신 주위에 모여든 신자 개개인의 탤런트를 적확하게 파악하시고 각기 맡은 직분이 교회에는 유익이 되고, 직분을 맡은 사람에게는 그 직분을 통한 인격성장의 기회가 되도록 각기 탤런트에 맞는 직분을 안배하시는데 천재적 소질을 가지셨다. 나도 신부님이 맡겨주신 크고 작은 교회내의 직분을 통해서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신앙인 김 모세로 성장할 수 있었다.   2. 진리탐구정신에 투철하신...

남북정상회담과 통일로가는길 2007

남북정상회담의성공을축하하며 김성준(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뉴욕협의회자문위원) 우리한반도의통일에대해서이야기할때분단의원인과역사그리고처한상황이서로다른데도불구하고흔히독일의통일을우리나라통일의롤모델로여기는경향이있는것같다. 독일은20세기전반기에두차례나세계대전을일으킨전쟁범죄국가로서패전의대가로2차대전후동서독으로분단(1945)되었지만, 우리나라는이씨조선위정자들의부질없는당파싸움, 무능과부패, 국제정세에대한무지, 등으로세계사적전환기에나라를잃고, 2차대전에서일제의패망과더불어찾아온해방을맞이하게되자마자우리민족의의사와무관하게외세(미국과소련)에의해서남북으로분단(1945)되었다. 다시말해서우리나라는2차대전후자본주의를대변하는미국과공산주의를대변하는소련이20세기후반기에45년동안벌인냉전의희생제물로서외세가안겨준분단의멍에를목에걸게되었던것이다.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체제와공산주의공산당독재체제의경쟁은불세출의고바쵸프를마지막지도자로가진소련의해체(1990)와더불어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체제의승리로막을내렸다. 소련의해체와더불어불어닥친개혁개방의바람에동구권의공산정권들이속속붕괴되는순간서독은스스로무너진동독을흡수하여통일을달성하게된다. 독일과우리나라는세계적냉전질서속에서분단을경험했다고하는점에서밖에는같은점이없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 독일은우리가경험한동족상잔을겪지도않았고, 통일을성취할때까지우리처럼전쟁을멈추고대치하는상태(휴전)에있지도않았다. 서독은항상동독을경제적으로도와주면서도, 돌아온탕자를대하는아버지의너그러움에불평하는맏아들(남한)처럼동독에퍼준다는말을쓰지않았다. 그리고동독정권이스스로붕괴했을때서독은가난한동독을돌아온탕자를맞이하는아버지처럼껴안았다. 그래서발생한것이소위통일비용이라고하는것이다. 한편, 남한은30여년간의군사독재정권에시달리기도하였지만, 구미선진국들이이루말할수없이많은사회적대가를치루며200여년에걸쳐성취한정치적민주화와경제성장을매우어려운여건아래서불과30여년동안에압축하여성취하는역사를창조하였다. 북한은50여년에걸친미국의적대적고립정책에대응하여자기폐쇄적국가로, 설상가상주요교역상대였던동구사회주의국가들의몰락으로경제가매우피폐한후진국으로전락하였다. ...

미주동포들의입장

김성준(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뉴욕협의회위원) 2005년9월베이징에서열린6자회담에서북한이핵프로그램을포기하고, 관계국은경수로제공문제를토의하고, 북한과미국은상호주권존중과평화공존과관계정상화를위한조치를취한다는합의문이나왔었다. 그런데, 그후미국은증거불충분한위조지폐사건을만들어경제봉쇄로들어가고, 북한은미사일을발사하고급기야핵실험이라는막바지선택을하기에이르렀다. 우리민족의터전한반도를둘러싸고벌어지는이러한일련의과정을지켜보면서, 우리미주동포들의입장은어떠해야할까하는생각을하게된다. 미주동포들의여론은대개두가지로나눠지는것같다. 그하나는북한정부를악의정권으로단정하고, 미국식으로옥죄어서결과가어떻게될것인지생각지않고김정일정권이하루빨리무너지기를바라는여론이있고, 또다른하나는현재우리가목격하는이해하기어려운형태의북한정부를반세기동안지속된냉전체제의산물로보고, 그래도동족이기때문에, 언젠가평화적으로합쳐야될파트너로서북한이스스로자립할수있도록도와줘야한다고생각하는여론이있는것같다. 현상황은2000년6월15일남북공동선언이후반세기에걸친반목과대립을극복하고휴전선위에어렵사리남북한간의신뢰를쌓아오고, 미국의눈치를봐가며국내적으로좌파반미정권이라는누명을써가며어렵사리햇볕정책을추진해온한국정부로서는매우큰시련의딜레마가아닐수없는것같다. 앞으로예견되는UN 결의안에의한북한의경제봉쇄, 식량지원중단, 등은오기와자존심을지키기위해끝까지벼랑끝전술을구사하는북한정부에제2의“"고난의행군”"을강요하는일이될것이틀림없다. 그러나미국의일방적인강경일변도의북한고사정책은그러지않아도이미피폐한북한인민들의삶만설상가상어렵게만들뿐, 현교착상황을바꾸는데별도움이되지않을것처럼보인다. 왜냐하면, 북한은남한처럼국민들이정부를견제할수있는열린사회가아니기때문이다. 북한정권이미우니까그인민들까지처벌하는것은아무래도옳지않은것같다. 이러한상황에서미국에뿌리를내리고사는우리미주동포들이취해야할입장은무엇일까? 좌파와우파, 반미와친미로갈라져서마냥서로싸워야옳을까? 북한을두둔하거나남한의햇볕정책을두둔하면빨갱이또는좌파라는소리를듣는다. 미국의일방주의와군사주의를비판하면반미주의자이자빨갱이라는소리를듣는다. ...

시대를 역행하는 남북관계를 지켜보며 2008

김성준(뉴욕지구 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사춘기의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공통적으로 성장통을 겪는 자녀들에게 애타는 인내와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이 좋은 약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 잘못된 길로 나가려는 자식, 특히 반항적인 아들을 대할 때 고압적인 태도보다는 대화와 설득을 통한 유화적 태도가 훗날 좋은 부자지간의 관계를 만들어준다는 사실 또한 배우게 된다. 우리 애들이 사춘기를 지나던 때 내가 살던 동네에 아들과 말싸움에서 불행히도 주먹싸움까지 간 아버지가 있었다. 나도 때때로 반항적인 아들을 대할 때 힘으로 누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 순간들이 많았으나 끝내 그 것만은 피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부자지간의 폭력은 그 관계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애타는 인내심으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표시하고 대화와 설득을 시도한 결과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춘기를 지나고 성년이 된 자녀들은 드디어 부모들의 애절한 사랑과 각고의 인내를 깨닫고 그들을 낳아 길러준 부모들과 화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된다.   나는 요즈음 해외 동포, 특히 미주 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10년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 같은 남북관계를 지켜보면서 참으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한동안 잘 나가던 남북관계가 참 보기가 좋았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임 두 정부가 어렵사리 발전시킨 남북관계를 무위로 돌리며 시대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미주 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북한보다 수 십 배 이상 가는 경제력과 세계에서 두 번째 가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로 과도한 개인의 자유를 누리는 남한이 개인의 자유도 없고 인간의 기본권인 의식주조차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을 너그럽게 대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남한의 국민과 위정자들이 북한에 대해 사춘기의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태도를 견지할 수는 없을까?....

6.15 공동선언 7주년 동포대화마당

김성준(12기 평통자문위원)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제 12 기 평통자문위원들의 임기가 끝나가고 있다. 정확하게 두 주 후면 제 13기 임기가 시작한다. 제 13기 위원으로 위촉을 받게 될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6.15 공동선언 7주년 동포대화마당이 지난 주 금요일 6월 15일 플러싱 한인 봉사쎈타에서 열렸다. 회장도 없는 제 12기 뉴욕협의회와 6.15 공동선언실천 뉴욕지역위원회가 공동주최한 행사였다.   평화네트워크 대표이며 조지 워싱턴대학 객원연구원으로 있는 정욱식 교수와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사무총장이며 콜럼비아대학 방문교수로 있는 김보근 교수가 발제자로 참석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우리 미주동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정욱식 교수는 주변 강대국들(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우리 민족의 주권이 우리 민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유린당했던 역사를 상기시키고,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미국의 국익과 군사전략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한다는 것은 주변 강대국들의 사이에서 우리 민족의 생존을 추구하는 문제와 같다는 것, 미국 시민으로서 미주동포들이 할 수 있는 일,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김보근 교수는 13차례나 북한을 방문한 경력을 가진 북한 전문가였다. 6.15공동선언이후 서서히 변하고 있는 북한, 남북한 경제협력현황, 눈앞에 보이는 북미수교, 북미수교 이후 벌어질 북한과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등을 설명하였다. 북미수교가 이루어지면, 주변 강대국들은 북한에서 경제적 이권 경합을 벌이게 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남한에 대한 경제의존도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지금이라는 이야기였다. 퍼주기니 좌파니 하는 논쟁으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북한...

햇볕정책, 올바른 북방정책 2010

김성준(평화통일 자문위원)   천안함 침몰 사건은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의문점들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미합동군사훈련 진행 중에 공격을 당했음에도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두 달이 지나서야 원인이 파악되는 등 한미 연합군의 방어 능력과 상황대처 능력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또한 사건발생 시각의 TOD 동영상이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고, 북한군의 침투 경로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으며, 결정적인 물증으로 제시된 어뢰 파편의 글씨에 관해서도 의문점들이 제기되고 있어 앞으로도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평시가 아닌, 그것도 미군과의 합동훈련 상황에서 초계함을 공격했다는 것은 현장에서 발각되었을 경우 국지전 내지는 그 이상의 정치 군사적 대가도 감수하겠다는 것을 각오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불가능하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냉전 시기와 같은 대결 구도가 재현되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건이 계기가 됐지만 그 배경에는 양쪽 정권의 적대적 태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대립·대결이 이어져서는 남북 모두 피해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남북관계의 관리능력 부재를 드러내왔다. 남북관계에 대한 관리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북제재만 강조하는 것은 외교적 입지를 축소시킬 뿐 아니라 위험한 안보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남한 정부에 6·15공동선언 및 10·4정상선언 존중을 주장하기에 앞서 전쟁을 들먹이고 남한 국민을 위협하는 그릇된 행동을 삼가야 한다. 북한이 자신의 주장대로 천안함 침몰과 무관하다면 적극적으로 해명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남한 조사결과를 반박할 증거를 내놓지 않은 채 날조극이라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설득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강경대응만 한다면 북한은 스스로 자기를 변호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잃게 될 것이다.   1980년대부터 중국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세워왔다. 56개 ...

천안함 침몰과 국제정치외교 2010

김성준(평화통일 자문위원)   대한민국 해군의 주력 초계함인 천안함(1,200톤급)이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께 백령도 서남방 2.5㎞ 해상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 두 동강난 채로 침몰하였다. 이 사건은 아직도 그 원인규명이 미궁에 빠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이 지난 60년 동안 대치하고 있는 해상 경계선상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남한의 보수신문들(조중동)은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일 수 있는 상대는 북한일 수밖에 없다는 추측성 결론을 내리고 북한 때리기로 일관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정부는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중국과 미국)을 섭외하여 북한 때리기에 동참을 강요하다시피 하다가 중국정부로부터 창피를 당하기도 하였다. 천안함 침몰에 대한 한국 보수신문들과 한국정부의 대응하는 모습을 보며 미주 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바를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2005년 국회를 통과한 남북관계발전법은 어떤 정부이건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며, 남북간 긴장 완화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되어 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도 한반도에 실질적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상생공영, 군사적 긴장 완화, 상호신뢰 구축을 목표로 한다고 되어 있다   한국의 보수 세력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가 추구한 대북 햇볕정책은 외세가 강제한 분단체제를 한반도에서 종식시키기 위한 최선의 정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앞으로는 상생·공영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급변사태를 기대하며 대결과 압박의 대북정책으로 일관하였다.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보수신문들의 추측대로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면, 이 참사는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대북정책의 결과로 봐야할 것이다. 만일 한국정부가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남북화해와 한반도의 평화증진을 위한 노력을 계속했더라면, 김대중 정부의 ...

김대중 선생의 명복을 빌며 2009

김성준(평화통일자문위원) 불과 두 달 사이에 대한민국의 근세사에 보기 드문 훌륭한 두 정치지도자를 한꺼번에 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는 상실감은 이루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나로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평화통일 자문회의 11기 때부터 미주 평통자문위원 노릇을 하면서 근자에 알게 된 분이었지만, 김대중 선생은 내가 1963년경(고2 때) 서울 아현동 천주교회 학생회 활동을 할 때 일요일 아침 8시 미사에 나오시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한 적이 있고, 1980년 5.18 광주 민중 항쟁사건 다음 해인 1981년도에 뉴욕에서 결성된 민주화 운동 단체(정의평화 민중연합)와 관계를 맺은 이후 나는, 그분이 1983년 미국 망명생활을 시작해서 1985년 귀국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뉴욕에 오실 때마다, 뉴욕의 민주화 운동권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 분을 가까이서 뵐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어서 나와 오랜 세월에 걸친 깊은 인연이 있는 분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김대중 선생의 강연과 연설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이 5.18(1980년)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언제 처형될지 모르는 인생의 극한상황(1980-1982)에서 쓴 옥중서신을 읽고 나의 젊은 시절(30대 중반)에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이 옥중서신은 그 당시 한국에서 인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뉴욕 갈릴리 문고에서 ‘민족의 한을 안고’라는 제목으로 1983년 12월에 발간되었다. 그 분의 강연이나 연설은 언제나 잘 준비된 내용으로 충만하였고, 핵심을 찌르는 논리전개는 좌중을 압도하는 경외심을 자아내곤 하였다. 근자에 쓰인 김대중 선생의 마지막 일기는 논문처럼 쓰인 옥중서신과 달리 그 분의 경천애인사상을 간결한 문장으로 맑고 깨끗하게 표현하고 있어 구구절절 열반에 이른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대중 선생의 어록가운데 내 마음에 와 닿은 말들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죽은 양심이다.” “용서하되 잊지 말자!” 토인비...

바보 노무현의 죽음이 가르쳐준 새로운 언어 2008

살신성인(殺身成仁)(Sacrifice oneself to preserve one's integrity), 산화(散華), 소신공양(燒身供養) 김성준(평화통일 자문위원)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한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그는 부인 권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수수한 사실을 대통령 재임기간에 알지 못했다는 주장을 하였는데, 최근 검찰이 그 주장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찾아내었기 때문에 자존심 강한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거짓말이 들어나서 천하의 조롱거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으로써 진실을 덮고 싶었을 것이라는 해석. 이와 다른 또 한 가지 해석은 기소도 하기 전에 입증되지 않은 혐의를 언론에 흘리는 정치 검찰과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쓰는 것은 물론 오직 인간적 모욕을 주기위해 본질과 관련 없는 내용을 확대 재생산 보도하는 보수 언론에 대한 항거, 정치 보복적 표적수사로 형편없이 찢기고 짓밟힌 자신의 존엄성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노무현식 메시지 전달의 방법이었다는 해석이다. 나는 후자의 해석에 더 공감이 간다. 그의 자살은 명예자살이며 정치적 타살이다. 그는 최고자리에 있을 때조차 권위주의의 타파에 앞장섰고,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신문의 표독한 공격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언론자유를 존중하였다.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고 민주주의와 진보와 정의를 추구하며, 생전에 늘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가 이 뜻밖의 죽음을 통해서 한국사회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 세계사에서 유래 없는 압축 경제성장과 서구가 200년이 넘도록 피와 땀을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를 단 30년 안에 이룩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최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한 인간이 목숨을 스스로 끊는 데는 개인적 절망감일 수도 있고, 메시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죽음조차도 삶의 한 표현방식이다. 그의 산화(散華), 어쩌면 그의 소신공양(燒身供養)은 노무현 그의 마지...

재외국민 참정권의 함정

최근 대한민국 국회가 재외국민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한다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르면 이 번 4월 보궐선거 때부터 시행한다는 소식이 동포사회의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다. 얼핏 들으면, 한국정부가 재외국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그 위상을 인정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미주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그 내용과 의미를 깊이 생각할수록 불쾌하고 씁쓸한 느낌을 갖게 된다. 왜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가?   이번에 소위 “한국 참정권”을 부여받은 미주동포들은 아직 “미국 참정권”을 갖지 않은 사람들, 즉 한국여권을 소지한 또는 미국 영주권을 소지한 사람들에 국한되므로, 나 같은 한국계 미국시민은 이 재외국민 참정권에서 제외될 뿐 아니라 이 한국 참정권이 미주동포사회에 끼칠 여러 가지 부작용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재외국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대한민국 헌법이 부여한 참정권이 본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재외국민들의 참정권을 인정하고 시행해야 할 직무를 유기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통과된 재외국민 참정권 부여 법안은 얼핏 보기에 대한민국 정부가 재외국민들에게 원래 없던 권한을 부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실은 그간의 대한민국 정부의 재외국민들의 권리옹호에 대한 직무유기를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재외국민들의 참정권시행이 미주동포사회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대개 몇 가지 부작용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첫째, 미국 내에서 대한민국 정치 및 선거운동이 가능한 일인지 미리 생각해볼만하다. 대한민국 선거운동이 미국의 국내법과 상충되지는 않을까?... 둘째, 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당파싸움이 미주동포사회에서도 벌어지지 않을까?... 그러지 않아도 대한민국 선거철이 되면 각종 후보 후원회가 결성되고 그들의 활동으로 미주 동포사회가 시끄러운데, 참정권이 시행되면 어떤 양상이 벌어질지 미리 생각해볼만하다. 셋째, 이 재외국민 참정권은 미주동포들이 대한민국의 참정권을...

좋은 옛친구들과의 여행 2006

고국 방문기  2006년 5월 평화통일 자문회의 뉴욕 협의회 위원 김 성 준 1. 망설임   약 한달 전, 미주지역 협의회 자문위원들의 전체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번에 간다면, 2003년 11기 평통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3번째 회의참석을 위한 고국 방문이 되는 셈이었다. 해외동포 및 국내 위원들이 모두 참석하는 11기 총회가 2003년 가을에 열렸을 때 나는 19년만에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하여 말로만 듣던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목격한 바 있다. 우리들이 해외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피 땀흘리던 지난 30년 동안 대한민국은 압축경제성장과 민주화라고 하는 대 역사를 이룩하고 있었다. 2004년 가을 1년만에 해외지역 협의회 자문위원들의 전체회의가 열렸을 때에는 금강산 1일 관광이 일정에 포함되어있어서 북한 땅을 밟아본다는 호기심이 회의 참석에 상당한 동기를 부여하였다. 그런데 이번 미주지역 전체회의에는 신라시대의 고도 경주와 대한민국 산업화의 초석 현대의 자동차 및 중공업 단지 관광이 꼬리에 붙어있었다. 이번 회의는 새로 임명된 12기 협의회 자문위원들의 연수를 위해 마련된 회의였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남쪽의 관광지보다는 통일시대의 상징 개성공단이 포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라던 소식은 끝내 들리지 않았다. 2박3일의 짧은 회의를 참석하기 위해 최소한 1주일이상의 일상생활을 접고, 온몸이 경직되고 뒤틀리는 장시간의 비행기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망설여졌다. 고민이 계속되었다.   2. 떠남   2005년 7월1일 12기가 시작된 이래 벌써 10개월이 지나가는데, 내가 속한 분과의 위원들조차도 다 알고 지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이래가지고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 중에 팀웍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서로 알아야 팀웍이 가능하다. 회의 참석은 서로 사귈 수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