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가운데 일치 ‘샐러드 보울(Salad Bowl)’ 2004

한국일보 2004.4.2                                                               김성준(평통 차세대 분과 부회장)
 
최근 뉴욕 평통이 대통령 탄핵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표명했다고 해서 요즘 동포사회에 왈가왈부 의견이 분분하다. 참으로 보기 좋은 현상이다. 회장을 역임했던 분 가운데 네 분(최희용, 윤계초, 오영준, 정영인)이 이에 불만을 표시하고 고문직인지 평통위원직인지를 사임한다는 것을 기자회견으로 밝힘으로써 분분한 의견을 더 부채질하는 격이 되었다.
 
금강산 관광 및 북한 아동을 위한 분유 전달차 서울 경유, 북한을 방문 중인 박준구 회장은 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 “성명서 내용 일부에 논란이 있을 수는 있으나, 평통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헌법기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평통 의장인 대통령을 지지하고 참여정부의 통일정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발표한 <탄핵정국에 대한 평통 집행부의 정치적 견해> 발표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논리로 평통의 성명서와 관련, 평통 사무처에 부정적 의견이 담긴 공문을 보낸 총영사관의 행동에 대해서도 “대통령을 적극 보좌해야 할 총영사관의 행동도 객관성과 중립성을 결여한 태도”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뉴욕 한인회까지 중재를 자청하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참으로 점입가경이다.
 
내 생각에 평통은 생길 때부터 대통령 지지기반 세력으로 조직되었고, 그 후 20여년이 경과하는 동안 줄곧 그렇게 존재해 왔다. 그래서 평통이 싫어하건 말건 그 이마에 어용단체라는 낙인도 찍혀있다. 이제 군부독재시대도 지났고, 국민의 정부시대도 지났고 바야흐로 평화 번영정책을 표방하는 참여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제 11기 평통이 약간 새롭게 조직된 것도 알려진 바와 같다. 평통이 조직된 후, 지난 20년 동안 평통은 민주화를 외치던 시끄러운 사람들을 백안시하며 집권세력을 추종하는 조용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그동안 소리내어 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평통, 무엇하는 곳인가”하는 힐난의 소리도 듣고 있다. 자유비판이 금기되던 시대에는 조용한 것이 미덕이었다고 해 두자.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제 11기 평통은 여러 가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셈이다. 그렇다고 우리 평통이 분열이라도 되는 것일까?
 
국론분열이라는 단어는 박정희시대부터 군부독재 세력의 상투어였다.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면 국론분열이요, 그래서 군대식으로 일사불란한 한 가지 복창소리만 내도록 강요하던 박정희의 ‘한국식 민주주의’에 우리 국민들은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 사람은 적당한 억압이 필요하다”는 궤변이 그간 독재자의 지배논리로 통용되었고, 지금도 대권을 쥐고 있지만 ‘억압없는 정치’를 해야하기 때문에 마치 무능력한 것처럼 보이는 노무현 대통령을 바라보면서 그런 궤변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는 것 같다.
 
동포사회의 단체장 선거에서도 여러 후보가 나서면, 경선은 화합을 깬다는 괴상한 논리가 상식처럼 통용되고, 비민주적 담합으로 회장을 뽑는 사례를 목격할 때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경선은 민주주의의 한 요소인데, 이 시대에 아직도 그런 해괴망측한 논리가 어찌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에 국론분열이라는 것은 없다. 월드컵 때 보여준 것처럼 우리 국민들은 뭉쳐야 할 때는 자발적으로 뭉칠 줄 아는 선진국민이다. 지금은 다만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결정할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 다양한 의견이 분분할 뿐이다. 분분한 다양한 의견을 잘 수렴하면 몇 배나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중론이 형성되는 것인데, 독재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중론이 형성되지 않을까봐 미리 다양한 의견의 표출을 원천봉쇄하려고 국론분열이라는 단어를 남용했던 것이다. 요즈음 국론분열이라는 단어는 기득권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국민 기만전술의 표어라고 하면 적합할 것 같다.
 
마찬가지로 동포사회에도 분열이란 없다. 이번 평통 집행부의 성명서(정치적 견해 표명)의 발표나 이에 반감을 품은 회장을 역임한 네 분의 소란스러운 사퇴서 제출이나 왈가왈부하는 여러 동포들의 의견이나 다 동포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목소리의 표출에 불과할 뿐이다. 그 것 자체가 동포사회를 다시 분열시키는 일은 결코 아닌 것이다. 동포들의 수준을 뭘로 보는가가 문제의 핵심인 것 같다. 다양한 목소리의 표출은 건전한 민주주의의 표징이다. 이것이 ‘샐러드 보울(Salad Bowl)’ 미국에 사는 우리 해외동포들의 특권이자 축복받은 모습으로 비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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