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격씨의 글을 읽고 2004
한국일보 2004.5.21 김성준(평통 차세대분과 부회장)
최근 1997년 8기부터 현재 11기까지 연임해온 평통위원직을 사임하면서 구구한 변명을 발표한 한태격씨의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어 이 글을 쓴다. 그가 한 말을 일일이 반박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고 그와 다른 생각도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한씨 글의 논지는 압축 경제성장을 이룩한 역대 독재정권과 기업인들에게 감사하고, 한국을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구해주고 한국 수출상품의 거대한 시장을 제공해주는 미국에 감사하고 역사를 외면하고 현실과 국제관계를 직시하지 못하고 환상을 정책화하려는 사람들의 조직에 동조할 수 없어서 평통위원직을 사임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경제성장을 위해서 땀흘린 사람들을 미화하고 보다 발전된 자유민주주의를 가져오기까지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마치 무위도식이나 하며 지냈던 사람들로 비하하고 있다. 그의 시각은 균형을 잃고 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한반도 분단이후 경제적으로 보다 윤택하고 정치적으로 보다 민주적인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한국을 이끌어 온 두 수레바퀴가 있었다면 그것은 압축경제성장을 주도한 사람들(수구)과 민주화를 주도한 사람들(개혁)이다. 두 세력이 있었기에 보다 윤택하고 보다 민주적인 오늘의 한국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해야 할 때이다. 이제 서로 이마를 맞대고 등을 두드려주며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 지혜를 짜내야 할 때이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로서 연합군에 의해서 분단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차 대전 이후 예견된 국제정치의 좌우 이데올로기 냉전구도 속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양대 진영을 대표하는 소련과 미국에 의해서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찾아온 해방을 맛보기도 전에 강점 분단되었다.
한반도는 각개의 남북정권 수립 이후 남한을 점령하고 있던 미군의 철수와 북한의 오판 남침, 미국의 재개입과 북한과의 휴전협정으로 이어진 정전시대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한은 그 이후 반세기에 걸쳐 지속된 동서냉전과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이데올로기 대결정책에 의해서 철저히 고립을 당해왔고, 미국의 고립정책에 대항하는 북한의 자구적 쇄국정책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낙후한 체제로 전락하는 결과를 자초하였다.
한편 남한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 인연을 맺은 덕택에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근대화의 두 바퀴라고 할 수 있는 압축경제성장과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경제적으로 보다 윤택하고 정치적으로 보다 발전된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하였다. 한반도 분단과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미국의 역할을 돌이켜 보면 미국은 우리 민족에게 병 주고 약을 준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분단의 원초적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정치의 역사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고 있듯이 우리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우리 민족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때에 따라 조정해 나가야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외세가 안겨준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냉전의 산물 마지막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분단의 극복, 이것이야 말로 우리 세대가 안고 있는 최대의 숙제이며 이 숙제를 푸는 열쇠가 참여정부 노무현 정권의 평화번영정책인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한민족의 피를 나눈 반쪽으로서 북한이 하루빨리 자립하고 개방하여 건전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선의의 노력에 이미 소멸한 구시대의 냉전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아직도 시대의 징표를 알아보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색깔론이 설득력을 발휘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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