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현양의 의의 1991


로사리오 성가단의 뉴욕 공연에 부쳐(1990-1991 새남터 6호)
 
한국 천주교회는 그리스도 신앙의 도입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후 수 백 년 간 지속된 박해시대에 버금가는 박해시대를 거쳐 교세 면에서 일취월장하는 오늘의 모습으로 성장 발전해 왔다. 서구에서 사양하는 그리스도 신앙이 한국에서 꽃을 피우고 사제성소가 풍성한 연유가 한국 순교 선열들이 흘린 피에 있다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떼르뚤리아노 성인의 말대로 과연 그리스도 교회는 순교자들의 피를 밑거름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근래에 와서 1982년 조선교구 설정 200주년을 기념했고, 1984년에는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역사적 방한과 더불어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수 만 명의 순교자 가운데서 뽑힌 103명을 시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국은 명실 공히 세계적 가톨릭교회의 순교성인의 나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한국 천주교회는 과거 역사 속에 묻힌 순교 선열들의 발자취를 발굴하여 현양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참 신앙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순교자 현양사업은 동방박사를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던 별빛처럼 우리들의 삶을 안내하고 비춰주는 한 가닥의 서광이 아닐 수 없다.
 
2천 년 전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오늘날에도 우리 삶 속에서 재현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우리 삶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라면, 지난날의 순교자들의 행적을 현양하는 목적은 순교자의 삶을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우리의 현실 속에서 민주화문제, 통일문제, 부의 균등분배문제, 등을 위해서 자기 신앙을 실천하다가 불이익을 당하거나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우리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사리오 성가단의 순교자 현양 칸타타가 그 당시 암담하고 살벌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처절한 순교의 단면을 그려냄으로서 메마르고 자기중심적인 삶에 익숙한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고 눈시울을 뜨겁게 해 주었다. 동시에 옛날의 순교자는 현양되는데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순교는 왜 냉소와 무관심을 사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해 준다.
 
우리의 현실과 연결이 안 되는 신앙행사는 감상주의적인 신앙심을 불러일으킬 뿐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우리는 그 때 그러했다는 감상만으로 그치지 않고 오늘 이 순간에도 다른 모습으로 박해와 순교가 재현되고 있음을 상기하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그것은 현대 크리스챤들이 과거의 순교자들의 모습을 오늘 우리 시대에서 식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도록 가르치는 교회의 교도권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Comments

  1. 항시 열정적인 모습에 저의 본보기가 됩니다
    이번 김사장님의 여행기는 마치 같이 앉아 독한 위스키를 나눈것같군요 주말 하이킹 하시며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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