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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December, 2011

성서모임 1986

1986년 새남터 4호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쯤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그 하느님의 말씀에 접하는가 하는 물음에는 대답이 궁해지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실정이 아닌가 한다.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접하기는 주일 미사 때 듣는 독서와 복음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성서모임의 참가자들은 지난날 생명의 양식인 하느님의 말씀을 소홀히 한 까닭에 타성에 젖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신앙생활이 이제 성서의 말씀과의 지속적인 친교를 통해서 활력을 찾게 됨을 체험한다. 또한 교회의 교리, 기도서, 전례, 등이 모두 성서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성서모임을 통해서 재확인하게 됨으로서, 여태까지 지루하고 형식적인 것만 같았던 전례가 얼마나 심오한 뜻을 머금고 있는지를 알게 되며, 따라서 그 전례를 통해서 더 많은 은총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국 교회에서는 약 20년 전부터 이러한 성서모임 운동이 벌써 도입되어 전개되었고,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 모임을 통해서 은총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요즈음 우리가 모이는 형태의 성서모임은 한국 교회로부터 전래된 교재와 봉사자를 통해서 시발된 점이, 성령운동, 부부주말, 꾸르실료, 등 교회내의 다른 여러 신앙쇄신운동이 한국 교회로부터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 역수입된 현상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모이는 형태의 성서모임이 시작된 것은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작년 11월 7일 목요일 저녁 전교회관에서 신망애 성서모임이 발족한데 이어 곧 겨자씨 성서모임이 결성되었고, 현재 무려 6개 성서모임이 매주 각기 다른 장소와 시간에 모여서 성서의 말씀을 서로 나누고 있다. 성서모임은 성서를 학구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모임이라기보다는 성서의 말씀을 우리의 생활로 받아들이기 위한 모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모...

사망률과 기대수명 1985

1985년 새남터 3호   생명보험(Life Insurance)에서 사망률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 말은 사람의 나이, 성별, 직업, 건강 상태, 등에 따라서 죽을 확률의 높고 낮음을 따지는 말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적은 사람보다 죽을 확률이 높고, 남자는 같은 나이의 여자보다 죽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확률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게 되는 것이다. 반변 연금(Annuity)에서는 기대 수명이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연금을 받을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를 따지는 말이다. 죽을 확률을 따지는 것 보다는 한결 희망적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비정한 숫자가 개재되어 있다. 즉, 나이가 적은 사람은 많은 사람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크므로 연금액은 줄어들게 된다. 또한 여자는 남자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크므로 같은 나이에서 더 적은 액수의 연금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남녀 차별이라는 이름으로 소송이 걸린 일도 있다.   그러나 정녕 개개인의 삶과 죽음은 이러한 확률적 통계 숫자와는 무관한 것이다. 과연 나의 잔여 생명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또는 어떠한 모양으로 죽게 될 것인가는 오직 우주 만물을 주재하시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지난 정월 어머니회 파티에서 흥겹게 춤을 추던 바오로 이성언 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불과 9개월 전의 일인데 이제는 만나서 이야기할 수 없는 고인이 되었으니, 낙엽 떨어지는 가을의 도래는 더울 쓸쓸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기 일주일전 그의 병실을 찾아 갔을 때 평소에 형처럼 다정하게 모이세! 하고 내 본명을 부르던 그는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좀 더 일찍 찾아가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지금으로부터 50년 후에 오늘을 사는 우리들 중에 살아남아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불과 1년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들이지만 마치 오래오래 살 것처럼 먼 장래를 생각하며 계획을...